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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보관함/창원정씨동추공파

집안모임

by 느나느나호 2010. 8. 10.
















한자昌原丁氏
영어의미역Changwon Jeong Clan

[연원]
우리나라 정씨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알려져 있다. 정덕성은 853년(문성왕 15)에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도로 귀양 와서 살았고, 후손들이 번성하였다. 장자 정열도(丁烈道)의 계손 정찬(丁贊)영광정씨(靈光丁氏), 그 아우 정관(丁寬)후창원정씨(後昌原丁氏), 차남 정응도(丁應道)의 계손 정윤종(丁允宗)나주정씨(羅州丁氏), 정연방(丁衍邦)선창원정씨(先昌原丁氏), 정영손(丁令孫)의성정씨(義城丁氏)의 중시조이다. 여수창원정씨는 상호군(上護軍) 정연방(丁衍邦)을 중시조로 하는데 그 자손들은 여수·순천·고성·사천 등지에 분거하고 있다.

[입향경위]
조선시대에 진사 정자린(丁自麟)의 아들인 정계생(丁戒生)은 중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좌랑(吏曹佐郞)까지 올랐다. 기묘사화를 맞아 상소문을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1519년(중종 14) 전라북도 남원에서 여수시 웅천동 송현마을에 은신했다. 이로부터 여수창원정씨가 시작된다.

[현황]
웅천동(熊川洞) 송현마을은 90% 이상이 창원정씨이다. 송현마을은 옛날에는 고음천(古音川)이라 불렀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순신의 어머니 변씨부인이 기거했던 충정공정대수(丁大水)의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송현마을정계생이 입향한 이후 손자인 11세손 정철(丁哲)·정린(丁麟)·정춘(丁春)웅동, 웅서, 웅남으로 분가했다. 이후 웅천동창원정씨들의 집단 세거지가 되었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13세손에서 선원동 가곡문수동, 14세손에서 서교동화양면안양, 15세손에서 화장동 화산마을율촌면 호산마을, 16세손에서 낙포동 상촌진례동 상암, 17세손에서 오천동 등으로 분파되어 나간다. 이외에도 창원정씨들은 돌산 지역과 여수시 관내 여러 지역에 다수 거주하고 있다.

[관련유적]
창원정씨와 관련된 유적 유물은 오충사(五忠祠)와 입향조 정계생의 월천공신도비(月川公神道碑), 정철신도비(丁哲神道碑), 정춘신도비(丁春神道碑), 정린신도비(丁麟神道碑), 정대수신도비(丁大水神道碑) 등이 있다. 오충사이순신을 주벽으로 삼고 4 충신과 함께 배양한 사원이다. 여수시 율촌면 청산 호산마을에는 경모재(景慕齋)가 있다. 경모재는 입향 선조 정시동(丁時童), 정사빈, 정시희를 추모하기 위하여 1971년에 세운 문중 재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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